티스토리 툴바



keeping my options open (and doomed)

어떠한 선택을 하고 그에 매진하는 대신,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동방식을 나는 곧잘 택한다. 일종의 꾸물거림증procrastin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요는, 그 선택과 그에 따르는 행동 및 그것들을 위한 노력을 함으로써 이룰 수 없게 되는 다른 모든 것들이 기회비용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아 이걸 하면 저걸 잃게 되겠지, 저걸 하면 이걸 잃게 되겠지,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는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는 저것도 이것도 잃지는 않는다, 최소한 가능성은 열려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맹점이다. 우선 이것도 저것도 내가 가진 시간 및 노력과 등가교환되지는 않는다. 해봐야 될지 안 될지 아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래서 이른바 효율적인 내지는 성공에 이르는 삶의 방법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어쨌건 화폐와 상품의 관계는 아닌 것이다. 즉 이것이나 저것이 내 손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어느 한쪽만을 택하기 아깝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또 한 가지, 내가 보유하고 있는 시간과 노력으로 이것이나 저것 중 선택한다는 개념도 문제가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내가 쏟을 수 있는 힘은 점점 줄어든다. 따라서 앞의 문장에서 선택지를 하나 늘려야 한다.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소모적이다. 시간을 아껴둘 방법은 없는 것이다.

뭐 이런 자기계발서 같은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Trackback 0 Comment 0

가사: Fleet Foxes - Helplessness Blues

무기력 블루스

나는 내가 어딘가 특별하다고 믿으며 자랐네
서로 뚜렷이 달라서 어떻게 보건 고유한 눈송이들 중 하나처럼
이제 와서 생각을 좀 해보니, 나는 차라리
거대한 기계 안 톱니가 되어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를 섬기는 게 낫겠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언젠가 다시 말해줄게, 조금만 있어봐 

내 이름은 무엇이며 내 보직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그냥 말해주세요
너에게 그토록 부정을 저지르는 어둠의 군대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어두운 복도에서만 움직이며 나 대신 내 미래를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황송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네, 보이는 건 모두 가져가"시라고 할 일은 없으니

그리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언젠가 다시 말해줄게, 조금만 있어봐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바깥 세상을 내다볼 때
보이는 모든 것이 너무나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곧잘 말문이 막힌다는 것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어지러워서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네
이 노래를 부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를 기다릴 필요가 있긴 한 걸까

네가 나를 원치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
언젠가 네게 돌아갈게, 내가 직접 

과수원이 있다면 피부가 까질 때까지 일하겠지
과수원이 있다면 온몸이 쑤실 때까지 일하겠지
그리고 넌 식당에서 주문을 받다 이내 가게를 볼 거야

햇빛 속 황금색 머리카락은 새벽녘 나의 빛
과수원이 있다면 온몸이 쑤실 때까지 일하겠지
과수원이 있다면 온몸이 쑤실 때까지 일하겠지

언젠가 난 스크린 속 저 남자처럼 될 거야

원문 via songmeanings.com


Trackback 0 Comment 0

일기

조금 전 새벽 두시쯤 갑자기 추워서 깼다. 분명 바람이 새어들어오고 있는 건 아닌데 스웨터를 입은 상반신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가 차갑고 떨렸다.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은 채 계속 잠을 청했지만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몸살 기운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전기 담요를 찾으려 했지만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바닥이 얼음장 같고 서 있는 순간순간마다 오한이 밀려왔다. 담요를 포기하고 상의를 하나 더 껴입은 채 침대에 누우니 상반신은 조금이나마 덜 추웠지만 다리와 머리, 특히 머리가 여전히-아니 더더욱 시렸다. 매트리스 아래에서, 창문의 닫힌 틈에서, 머리 위에서 차가운 공기가 끝없이 몰려와 머리카락 속 공간을 채웠다.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보니 차가웠다. 새우처럼 웅크려 지난 번 이렇게 오한이 들었던, 옛 애인이 데려다준 서귀포 응급실을 생각했고, 왠지 이 상황이 서글프고, 그때는 그녀가 있었지만 지금 나는 엄마를 새벽에 깨우기도 꺼려질 만큼 가족 간의 유대조차 없어서, 독립 내지 자취를 하려면 엄마 도움을 자꾸 받아싸면 안 되는데, 근데 또 엄마랑 같이 살고 있는데 새벽에 아파서 깨우지도 못하는 게 뭔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눈물이라도 쥐어짜고 싶다고,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당연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사실 하나도 서글프지도 않았으며 나는 헛짓을 그만두고 전기 담요를 한 번 더 찾아본 뒤 엄마를 깨웠다. 열린 형 방문 사이로 가요 스트리밍 같은 것이 들려왔다. 형은 내가 밤에 부시럭거리는 소리, 평소에 음악 듣는 것 등을 정말 싫어해서 말도 안 되게 싸우고 얻어맞은 게 한 두 번이 아니고 집에서 숨죽인 듯 있는 게 버릇이 됐는데. 뭐 상황의 개선이라면 상황의 개선일 수도. 엄마가 찾아준 전기 담요를 깔고, 엄마가 꺼내준 노란 알약을 삼키고, 다이얼을 9까지 올리고 누워 잠시 기다리니 따뜻해져서 잠이 들었다. 엄마가 내 직장 생활을 염려하며 혀를 끌끌 찼다. 전기 담요 웅웅대는 소리가 포근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1

올해 뭔가 재밌는 일이 엄청나게 생겨날 것만 같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 이 상서로운 기운은 어디에서 오는가? 허술한 생각들.

1. 차세대 세대론: 80년대생들의 역습이다. 꼰대들은 좀 퇴장하실 때가 됐다.
2. 신기술 이상주의: 스마트폰, sns의 보급이 관심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무진장 만들어냈다. 사람들을 섞어놓고 보니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3. 콜라보레이션의 확산: 이건 누가 그렇다고 어디서 그러던데... 근거가 있는 얘긴가
4. 디자이너들의 역습: 이제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은 옛날 홍대 미대 같은 느낌? 뭐 내가 옛날 홍대 미대가 뭐였는지 아는 건 아니지만... 암튼 오히려 더욱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듸자인 이즈 에브리띙...
5.

졸려서 생각 안 나
Trackback 0 Comment 0

여태껏 구워서 들은 씨디들

방 정리의 일환으로 시디를 좀 버리거나 누구 주거나 장터에 내놓거나 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아이팟으로 다 들으니까 과시/자위용으로 진열해놓을 것 말고는 전부 없애기로 하였고, 갖고 있는 시디의 2/3 정도가 그에 포함되어 빠이빠이할 운명. 다만 2/3는 CDR을 뺐을 때 얘기고, 포함시킨다면 95%는 없어지는 꼴이 되지 않을까... 공시디에 뭘 많이 구워 다녔다는 걸, 예나 지금이나 돈 내기 싫어한다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그것들을 전부 열심히 들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구워놓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지 쩝..
암튼 버리기 전에, 순서 없이 CDR 목록을 만들어봅니다. 거의 대부분 직접 구운 것, 일부는 선물받은 것.



LOVE PSYCHEDELICO - LOVE PSYCHEDELICO III
EELS - ELECTRO-SHOCK BLUES
FOLKSONGS FOR THE AFTERLIFE - PUT DANGER BACK IN YOUR LIFE
STEREOPHONICS - YOU GOTTA GO THERE TO COME BACK
X-JAPAN - DAHLIA
X-JAPAN - BLUE BLOOD
X-JAPAN - VANISHING VISION + ART OF LIFE
X-JAPAN - JEALOUSY
DASHBOARD CONFESSIONAL - MTV UNPLUGGED
G. 고릴라 - 사랑이라는 이름의 혼돈
CREED - HUMAN CLAY
CREED - WEATHERED
FRANZ FERDINAND - FRANZ FERDINAND
PORTISHEAD - DUMMY
PORTISHEAD - PORTISHEAD
FASTBALL - THE HARSH LIGHT OF THE DAY
THE GO! TEAM - THUNDER LIGHTNING STRIKE
CLAP YOUR HANDS SAY YEAH! - CLAP YOUR HANDS SAY YEAH
PAPA ROACH - INFEST
MASSIVE ATTACK - PROTECTION
TALKING HEADS - STOP MAKING SENSE
NITIN SAWHNEY - PROPHESY
ARAB STRAP - MONDAY AT THE HUG AND PINT
GOMEZ - ABANDONED SHOPPING TROLLEY HOTLINE
TOTO - THROUGH THE LOOKING GLASS
WEEPER - WEEPER
PAVEMENT - CROOKED RAIN, CROOKED RAIN
FISHMANS - KYUCHUU CAMP
WEEZER - WEEZER, MALADROIT
PLACEBO - SLEEPING WITH GHOSTS
WOLF PARADE - APOLOGIES TO QUEEN MARY
SIGUR ROS - AGAETIS BYRJUN
BRAD MEHLDAU - LARGO
STRUNG OUT OK COMPUTER
KIRINJI - 47'45"
KIRINJI - 3
KIRINJI - OMNIBUS
GODSPEED YOU BLACK EMPEROR! -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E TO HEAVEN
BOA - BOA
JET - GET BORN
BETA BEND - HOT SHOTS II
MATCHBOX TWENTY - MAD SEASON
KENT - VAPEN & AMMUNITION
METHODS OF MAYHEM - METHODS OF MAYHEM
OFFSPRING - AMERICANA
MUSE - HULLABALOO
MASSIVE ATTACK - MEZZANINE
PLACEBO - BLACK MARKET MUSIC
PALO ALTO - HEROES AND VILLAINS
SKID ROW - THICK SKIN
PLACEBO - PLACEBO
MANSUN - NEGATIVE EP
MANSUN - ATTACK OF THE GREY LANTERN
'93 THOM YORKE'S SIGNAL SESSION
MATRIX RELOADED THE ALBUM
METALLICA - ST. ANGER
VA - LOUD ROCKS
RAGE AGAINST THE MACHINE - RENEGADES
RAGE AGAINST THE MACHINE - RAGE AGAINST THE MACHINE
PIXIES - SURFER ROSA
DASHBOARD CONFESSIONAL - THE PLACES YOU HAVE COME TO FEAR THE MOST
DASHBOARD CONFESSIONAL - A MARK, A MISSION, A BRAND, A SCAR
DASHBOARD CONFESSIONAL - THE SWISS ARMY ROMANCE
MATCHBOX TWENTY - YOURSELF OR SOMEONE LIKE YOU
패닉 - SEA WITHIN
AMERICAN HI-FI - THE ART OF LOSING
DISHWALLA - AND YOU THINK YOU KNOW WHAT LIFE'S ABOUT
VA - SWEET DREAMS FOR FISHMANS
BECK - GUERO
INTERPOL - ANTICS
SIGUR ROS - TAKK
PLACEBO - WITHOUT YOU I'M NOTHING
GREEN DAY - WARNING
VA - VANILLA SKY OST
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RANCID - RANCID
RADIOHEAD - THE BENDS
AIR - MOON SAFARI
RADIOHEAD - PABLO HONEY
RADIOHEAD - LIVE IN PARIS(ST.DENIS) BOOTLEG
ROY BUCHANAN - SWEET DREAMS: ANTHOLOGY
MARILYN MANSON - HOLY WOOD
MUSE - ORIGIN OF SYMMETRY
SENTIMENTAL GRAFFITI OST
MUSE - SHOWBIZ
RADIOHEAD - HAIL TO THE THIEF
LIMP BIZKIT - 99 WOODSTOCK LIVE
BEATALICCA - A GARAGE DAYZ NITE
DIMITRI FROM PARIS - CRUSHING ATTITUDE
L'ARC~EN~CIEL - DUNE
L'ARC~EN~CIEL - TIERRA
L'ARC~EN~CIEL - HEAVENLY
L'ARC~EN~CIEL - TRUE
TAHITI 80 - PUZZLE
TAHITI 80 - WALLPAPER FOR THE SOUL
MANSUN - LITTLE KIX
THE WALLFLOWERS - BREACH
CLAZZIQUAI - CLAZZIQUAI
이적 - DEAD END
PAT METHENY - ONE QUIET NIGHT
SPIRITUALIZED -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DEEP PURPLE - MACHINE HEAD
SHIINA RINGO - SHIINA RINGO
BLUR - THE BEST OF BLUR
시나위 - DOWN & UP
시나위 - 2.5집
시나위 - FREE MAN
시나위 - SET MY FIRE
시나위 - 매맞는 아이
시인과 촌장 - I
시인과 촌장 - VOL.2
시인과 촌장 - IV
INTERPOL - TURN ON THE BRIGHT LIGHTS
OUR LADY PEACE - CLUMSY
패닉 - PANIC
패닉 - 밑
넬 - REFLECTIONS OF NELL
김사랑 - 나는 18살이다
김사랑 - NANOTIME
윤도현밴드 - AN URBANITE
DELI SPICE - 1집
DELI SPICE - 3집
DELI SPICE - D
E.L.O. - ELDORADO
VA - COYOTE UGLY OST
EMINEM - THE MARSHALL MATHERS LP
YNGWIE MALMSTEEN - CONCERTO SUITE FOR ELECTRIC GUITAR AND ORCHESTRA IN E FLAT MINOR LIVE WITH THE NEW JAPAN PHILHARMONIC
STRATOVARIUS - STRATOVARIUS
QUEEN - LIVE AT WEMBLEY '86
QUEEN - LIVE KILLERS
LED ZEPPELIN - PRESENCE
LED ZEPPELIN - IN THROUGH THE OUTDOOR
DEEP PURPLE - THE COMPACT DISC ANTHOLOGY
ROGER WATERS - AMUSED TO DEATH
LIMP BIZKIT - THREE DOLLAR BILL, Y'ALL
LIMP BIZKIT - SIGNIFICANT OTHER
LIMP BIZKIT - CHOCOLATE STARFISH N DA HOT DOG FLAVORED WATER
DISTURBED - THE SICKNESS
SNOT - STRAIT UP
POWERMAN 5000 - TONIGHT, THE STARS REVOLT!
LINKIN PARK - HYBRID THEORY
FUEL - SOMETHING LIKE HUMAN
FUEL - SUNBURN
LIVE - BIRDS OF PRAY
FOO FIGHTERS - THERE'S NOTHING LEFT TO LOSE
ZWAN - LIVE IN GLASS HOUSE
MR. BIG - LEAN INTO IT
THE CZARS - LA BREA TAR PITS OF ROUTINE
THE CZARS - BEFORE BUT LONGER
AIR - THE VIRGIN SUICIDES
MERCURY REV - YERSELF IS STEAM
THE THE - MIND BOMB
GRANDADDY - THE SOPHTWARE SLUMP
GRANDADDY - UNDER THE WESTERN FREEWAY
GRANDADDY - SUMDAY
TOM JONES - RELOAD
JANE'S ADDICTION - STRAYS
TRAIN - MY PRIVATE NATION
SISAY - ANDEAN HEALING
RADIOHEAD - KID A
PEACHES - THE TEACHES OF PEACHES
THE REAL GROUP - ONE FOR ALL
THE REAL GROUP - COMMONLY UNIQUE
MUM - YESTREDAY WAS DRAMATIC, TODAY IS OK
MUM - FINALLY WE ARE NO ONE
COLDPLAY - B-SIDES
JEFF BECK - THERE AND BACK
NIRVANA - TRICK OR TREAT?
NIRVANA - PAY TO PLAY
EVERCLEAR - SLOWMOTION DAYDREAM
EVERCLEAR - WORLD OF NOISE
EVERCLEAR - SPARKLE AND FADE
COLLECTIVE SOUL - BLENDER
COLLECTIVE SOUL - DOSAGE
COLLECTIVE SOUL - HINTS, ALLEGATIONS, AND THINGS LEFT UNSAID
COLLECTIVE SOUL - COLLECTIVE SOUL
COLLECTIVE SOUL - DISCIPLINED BREAKDOWN
KORN - ISSUES
KORN - UNTOUCHABLES
KORN - FOLLOW THE LEADER
KORN - KORN
TEARS FOR FEARS - TEARS ROLL DOWN
GUITAR BATTLE: JIMI HENDRIX VS PURPLE RAIN

Trackback 0 Comment 0

삼키기

나는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한다. 처음으로 정상적인 크기의 알약을 삼켜본 것이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그 전에는 전혀 삼키지 못해서 빻아먹거나 씹어먹거나 캡슐을 분리해서 숟가락에 담아 먹거나(나중에는 귀찮아서 고개를 젖히고 입 언저리에서 열어 먹었다) 하는 식이었다. 가루약이나 시럽을 받아 오게 되면 안도하고, 크고 딱딱해서 잘 씹히지도 않는 녀석이 들어 있으면 그야말로 끔찍했다. 지금도 타이레놀 정도보다 큰 알약은 가끔씩 잘 안 넘어갈 때가 있다.

알약을 못 삼키면 저능아가 된 기분이다. 약 먹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
1) 약을 입에 넣는다 2) 물을 한 모금 머금는다 3) 함께 꿀떡 삼킨다 4) 참 잘했어요!
약에 통달한 사람들은 2)를 생략하고 약만 삼키기도 한다. 근데 나는 물을 아무리 많이 머금어도, 아니면 삼키기 적당한 양을 가늠해서 살짝만 머금고 있어도, 도무지 그 '꿀떡' 부분이 안 되는 것이다. 입에 머금은 물 속, 혀뿌리 근처에서 약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만 하고 나는 마치 뇌의 특정한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입 속 내용물을 삼키지 못한다. 아마도 약이 넘어가다가 도중에 식도에 걸리거나 기도로 넘어가서 사레가 걸리거나 했을 때의 고통을 몸이 미리 두려워하며 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아무튼 한번 몸이 연하嚥下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물론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1) 고개를 뒤로 45도 젖힌다 2) 혀로 톡톡 튕겨 알약을 뒤쪽으로 조금씩 보낸다 3) 볼살을 어금니 사이로 쪽 빨아들여 2)의 과정을 돕는다 4) 한 번에 삼키기에는
입 안에 물이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그 중 일부를 미리 삼킨다 5)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다 "삼켜. 삼키자. 삼킬 수 있어. 삼켜! 삼켜!" 6) 이번에도 물만 삼켰다는 것을 확인하고 물을 한 모금 더 머금은 뒤 1)부터 다시
캡슐일 경우가 특히 더 심하다. 빌어먹을 캡슐은 미묘하게 가벼워서 물 위에 둥둥 뜨는데다가 조금만 머금고 있으면 캡슐이 너덜너덜해지면서 기분나쁜 맛이 퍼져나온다. 아무튼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아래턱이 얼얼해지고 가슴 속 어딘가에서부터 참을 수 없이 짜증스러운 좌절감이 몰려온다. 방금도 왠지 항생제를 삼키 못해서 씹어먹어버렸다. 한 번 발동 걸리면 좀 오래 갈 때가 있어서 좋지 않은데 말야.

다른 얘기지만 침 삼키는 것을 의식하게 되어서 한동안 성가신 적도 있었다. 왜 누군가가 자신이 어떻게 걷는지를 의식하게 된 이후로 한발짝도 내딛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아니면 눈을 깜빡이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왠지 더 깜빡이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경우 있잖은가. 평소에는 침 삼키는 걸 의식도 못하지만,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어쩐지 별 계기 없이 내가 침을 삼키는 행위를 굉장히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 한 동안 몹시 자주 삼켰을 뿐만 아니라 한 번 삼킬 때마다 짝사랑해오던 미녀한테 오늘은 고백해야지 마음먹고 나왔는데 만나자마자 친한 오빠랑 놀러 가기로 했다고 금방 가야 된다면서 그래서 무슨 일인데, 라고 그녀가 물어왔을 때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일단 침을 꿀꺽 삼키는 것처럼 제대로 침을 꿀꺽 삼키게 되는 것이었다. 자려고 누웠을 때도 계속 침을 열심히 삼켜대다보니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꽤 긴 기간 동안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마찬가지로 별 계기 없이 이 버릇이 없어져버렸다. 아마 잊어버린 거겠지. 근데 이 글 쓰다보니까 어쩐지 그때 생각이 나서 몇 번 침을 꿀꺽 삼키고 나니 다시 그 버릇이 도진 것 같다 이제 침 삼킬 때마다 의식하게 돼 아우 씨발
Trackback 0 Comment 2

단편 코미디

뭔가 자다가 깨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불현듯 내게 찾아와서 아 일단 기록해놔야지 한 스토리. 최진권이 보고는 아 나 이거 존나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했다

청년
굉장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상황(편의점 계산대. 지하터널 노숙자)
온갖 클리셰를 동언한 진중한 비밀 누설 + 제안을 해오는 중년: ex 자네 ***라고 들어보았는가. 물론 무슨 헛소린지 싶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사실 지구는 %%에게 위협받고 있어. 인류의 미래 내지 생존, 전지구적 위기의 극복에 핵심적인 열쇠가 바로 ***라네. 그리고 ***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자네뿐이야. 우리와 함께 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온갖 CG와 자료화면들이 동원된 화려한 개뻥이다. 느닷없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장비로 자료화면을(슬라이드쇼 등) 보여주는 중년을 보여줘도 좋을 듯.
아무튼 처음에는 황당해 하다가 감언이설에 슬쩍 마음이 동해버린 청년, 정말인가요? 라고 되묻는다
순간 (혹은 정말이냐구? 라고 되묻고 한참 동안 터져나오는 것을 참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중년. 그야말로 파안대소하며 눈 앞의 멍청이를 손가락질로 조롱하다가 유유히 가버린다

청년이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설정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이름 같은 걸 알고 다가오면 왠지 주인공들이 낯선이를 더 잘 믿으니까. ex 맨 앞 장면에서 누군가와 부딛히고, 좀 걸어가다가 누가 뒤에서 불러세운다. oo씨? 라면서.
Trackback 0 Comment 0

꿈에

인디투고에 밴드가 새로 업데이트됐는데 왜 그걸 틀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구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이 시망이었는데 보고 있노라니 노래가 괜춘했다. 쿡스나 뱀파이어위켄 느낌으로 멜로디 좋고 코드 진행 예쁜 음악을 우쿨렐레 보컬에 기타가 두 명이었나, 뭐 그런 팀이 하고 있었다. 옆에 누가 알려줘서 깨달은 거지만 보컬이 양윤모였다. 오 괜찮네, 감탄하고 있노라니 밴드 이름이 페인트박스였다. 페인트박스 멤버가 대체 얼마나 바뀌면 양윤모가 우쿨렐레 보컬을 맡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걸 보고 나니 뭔가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Trackback 0 Comment 2

여자 수첩


19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초년생일 때, 친구들과 이대 앞 알파문고에 갔었다. 여자애들이 펜 같은 걸 사는 걸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수첩을 하나 사서 모든 페이지였나, 연락처 부분만이었나, 아무튼 그걸 전부 여자 목록으로 채우는 프로젝트. 물론 함께 자본 여자들만 말이다. 농담이랍시고 그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지만 사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했었다. 현실은 다소 다르게 진행되었다.
Trackback 0 Comment 2

'필사적으로 일하는' 진짜 이유

"...두려움은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만드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해고될 거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은 명백한 두려움은 제한된 효과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를 우울하거나 무력하게 만들고, 쇠약하게 하거나 분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해고 직전에 해고 통지를 받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근거한 미묘한 두려움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우리들 대다수는 어떤 막연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더 오랫동안 일한다. 경영진은 사업의 실패를 두려워하고, 혹시 놓치는 것이 있을까봐 직원들이 휴가를 갈 때조차 노심초사한다. 결국 근로자들은 소진되거나 자멸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할 것이다. 오늘날의 회사원들은 와이트가 말했던 조직인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고, 더 큰 압력을 참아낸다. 어떤 이들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경주에 남아 있는 것이다."

조안 B. 시울라 <일의 발견> 다우출판사, 235쪽
Trackback 0 Comment 0